Issue vol.4 2023-11-07 635
김신권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1. 과목명과 과목소개
“근대 의학의 여러가지 문제들”이라는 과목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근대 생의학(biomedicine)의 발전 이후에 의학과 사회에 나타나게 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인 이해를 시도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의학과 결국 ‘의사되기’가 의미하는 다면적인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업의 목적은 학교 수업 과정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고민하고 토론한 내용들을 자신들의 삶과 공부에 적용해 볼 수 있게 하는, 보다 큰 목적이 있다.
우선 이 수업이 전제로 하는 것은 현재 의과대학 학생들이 공부하고 실천하는 이른바 서양의학(Western medicine)을 생의학으로 정의하는 관점이다. 근대 생의학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시작되어 발전한 하나의 의학 전통(a medical tradition), 즉 근대 유럽에서 몸과 질병, 그리고 치유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시작된 하나의 특수한 의학 전통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진 인간의 몸과 질병,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인간의 보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 걸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수업은 인간의 몸과 치유에 관한 배움과 실천이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이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동시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의학에 관한 이해는 다양한 배경의 인간들이 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 온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2. 수업의 취지
기본적으로 의과대학 교육에서 학생들의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그 예를 찾기가 어렵지만 의료인문학의 교육방법으로는 꼭 필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업은 토론을 주로 하는 수업을 위해서 flipped learning 과 team based learning 의 좋은 점을 결합해서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이 수업은 의예과 통합 6년 과정 중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아주의대의 교육과정은 이 수업이 진행되는 4학년 이전에 의료인문학 1,2,3 과 의학과 건강의 문화사라는 의료인문학 수업들을 배치하고 있으며 이를 모두 수강한 학생들이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이미 의료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고 있으며 이 수업의 초점은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의학교육과 의사되기의 과정 가운데서 학생들이 경험하거나 경험하게 될 실제적인 문제들을 대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물론 수업이 제공하는 것은 여러 이슈들에 대한 정확한 하나의 정답이 아니고 다양한 가능성의 발견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학생들과 교수가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더욱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주체적인 관점을 만들어 가게 된다. 동시에 이 수업은 이후 5학년과 6학년에 이어지는 임상 실습 과정의 도입부로써의 역할도 하고 있고 그 다음 학기에 진행될 “의사와 프로페셔널리즘” 이라는 과목의 연결선 상에서어떻게 학생들이 장차 의사로서의 의학전문직업성을 형성해 나가게 될 것인지 고민을 시작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3. 수업의 성과
이 수업은 근대 이후의 생의학을, ‘몸’을 가진 인간이 오랜 시간의 ‘역사’를 거쳐 ‘질병’과 ‘치유’의 문제와 씨름하며 만들어 낸 ‘사회’와 ‘문화’의 한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근대 의학이 다루고 있고 관련을 맺고 있는 최근의 여러가지 문제들(issues)을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인간의 몸과 질병,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한 다면적인 접근과 이해를 통해 최근 의학의 여러 문제들을 함께 생각해 보고 새롭게 이해하면서 의학에 대한 개념을 보다 폭 넓게 확장하는 협력적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을 통해서 학생들은 자신이 경험하게 될 의학의 여러 문제들을 다원적(pluralistic)이고 다면적(multi-dimensional)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며 근대 의학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융합학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과 질병, 그리고 치유가 가진 의미를 발견하며 현대 의학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학생들은 주위 동료들이나 교수들의 다양한 관점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견만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배우게 되고 동시에 정말 자기 자신이 느끼고 발전시킨 생각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면서 의사되기를 배우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4. 개발과정
이 수업은 1학점으로 매주 1시간의 수업 시간이 주어지는 형태였으나 수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2주를 하나로 모아 적어도 한번 수업에 2시간의 수업시간을 확보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주 다른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이 그룹 토론을 진행하고 발표하면서 논쟁과 피드백을 받는 구조를 기본으로 하였는데 아주의대가 모든 학년에 걸쳐 6개의 칼리지라는 학생 그룹으로 학습을 진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토론 그룹은 자연스럽게 각 칼리지 구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아주의대는 매년 신입생이 비교적 소수인 40여명으로 이런 학교의 특수성은 학생들이 토론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이점을 제공한다.
5. 수업의 진행방법
항상 일정하지는 않지만 토론의 주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의학에 왜 윤리가 필요한가?
의사의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
의학과 권력: 감시와 처벌
건강과 질병의 문제
사람인가? 아니면 환자인가?
면역과 백신의 문제
제목만 봐서는 토론의 주제와 의도를 쉽게 알 수 없도록 포괄적인 제목을 선정하였으며 이는 수업 방식과 관련이 있다. 수업 방식의 특징은 일종의 Flipped Learning을 적용하고 있는 점이다. 각 수업 주제에 관하여 교수가 미리 20-30분의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매 수업 전 온라인에 제공하고 모든 학생은 이를 사전에 공부한 후 수업시간에는 전적으로 토론에 임하게 된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동영상을 보고 나서 토론 주제를 접할 때 새로운 관점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업이 시작되면 그날의 토론 주제가 발표되고 이후 각자의 칼리지별로 모여서 조별토론을 30분간 진행하고 다시 모여서 1시간 가량의 발표와 종합토론을 이어간다. 이 수업에서는 가능한 한 임상과 기초의 교수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토론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관점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수업을 마친 후 모든 학생이 수업과 토론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감상문의 형태로 제출한다. 물론 감상문을 매우 간결하게 쓰는 학생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상당히 공을 들인 글쓰기를 시도하고 많은 학생들이 긴 글쓰기를 통해 깊이 있는 성찰과 질문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말에는 4-5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서술을 시도하고 이를 질적으로 평가하는 기말시험을 실시하여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아주의대는 최근 절대 평가제도를 실시하여 pass/non-pass 로 학생을 평가하며 성취가 매우 뛰어난 소수 학생들의 경우에 honour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토론 과정을 통해 배운 것들을 보고서에 반영하여 평가하는 것은 형성평가로써의 기능을 하고, 기말에는 서술형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6. 나누고 싶은 경험
지금까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물론 수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의대에서 처음 시도해보는 전면 토론 수업에 대해서 소수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각 수업 토론 주제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교수가 수업을 통해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의도를 묻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 형식이 정착되고 이전에 의료인문학 수업에 참여하고, 이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학생들이 토론에 주체적이며 비판적인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이 익명으로 작성한 수업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점을 시사한다.
“최근 들어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혹은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단순하게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상황과 관련한 인문학적 내용을 먼저 배운 후 이와 관련지어 토론을 진행하였기에 생각 정리를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업 공부에만 매몰될 수도 있는 본과였는데 덕분에 놓치면 안될 마음가짐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토론의 주제에는 정답이 없지만 토론의 과정과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옳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자각은 이 수업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판데믹 시절에는 이 수업이 줌(Zoom)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면수업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더욱 효과적인 토론과 논쟁이 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열린 마당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의견과 대화하고 나름대로의 논리와 근거를 정리하여 필요한 결론을 만들어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때로는 학생들의 깊이 있는 통찰과 논리적인 전개에 놀랄 때가 있다. 의대생은 발표나 질문이 활발하지 않다는 편견도 이 수업에서는 모두 깨지게 된다. 학생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면서 의사되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성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특히, 깊이 있는 수업 감상문을 3-4장씩 쓰면서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연구를 거듭하는 많은 학생들이 있기에 이 수업에 더욱 큰 열의를 갖게 된다.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조교수로 일하면서 의학사와 의료인류학을 비롯한 의료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옥스포드대학교에서 의학사로 박사(D.Phil)를 받았고 동시에 의료인류학을 공부했다. 조지타운대학교에서는 역사와 종교학을, 드류대학교에서는 미국종교사를 공부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류학적인 주제들을 연구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신의학의 역사와 정신건강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