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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Education

Issue Vol.2 2023-09-06 3067

예병일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이제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닌 한센병


 

    미담 서정주의 ‘문둥이’는 아주 짧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명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MZ 세대는 흔치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22년째를 맞이한 지금은 1936년과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애기를 먹는다는 것은 범죄에 해당하므로 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료 방법이 없고 외모가 변해가는 공포의 감염병이었던 까닭에 그 시대에 문둥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대한나관리협회(현재의 한국한센복지협회)에서는 1999년 3월부터 “나(癩)”라는 용어 대신 한센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간질’을 ‘뇌전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꾼 것처럼 ‘한센병’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은 용어가 지닌 바람직하지 못한 은유를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지적했듯이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어려운 용어는 올바른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간질’, ‘정신분열증’, ‘나병’, ‘문둥병’은 모두 의학지식이 아주 부족할 때 붙인 이름이며, 오랜 기간 사용되는 동안 질병에 대한 지식이 많아져서 이제는 더 이상 공포와 혐오의 질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혐오에 대한 은유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가 의예과 2학년이던 1984년, 현재는 유튜버이자 비뇨의학 전문의로 활동중인 이웅희 원장의 권유로 소록도 방문 기회를 잡았습니다. 의학과 1학년 10여 명, 의예과 2학년 10여 명, 의예과 1학년 2명으로 이루어진 방문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토론에 임해야 했습니다. 이 때 서정주의 시와 함께 한센병 환자인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길-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도 알게 되었습니다.



    의학이라곤 의학영어 외에 공부한 적 없는 의예과 학생이 “발가락이 없어지고 잘리는” 싯구를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미생물학 시간에 한센균에 대해서 배울 때 말초신경이 마비되면서 생기는 현상이어서 통증이 없이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환자를 만나고 온 다음이어서 이 부분만큼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갔습니다.


    소록도에 가기 전에 선배들로부터 여러 번 들은 것처럼 우리가 만난 환자는 한센병을 전파하지 않는 음성 환자들이었고, 보통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는 웃음 가득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완치되어 사회로 나가셨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자신이 살던 곳을 방문한 분을 만난 것도 ‘더불어사는 삶’에 대한 의미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17대 원장으로 11년 9개월을 보내신 고 신정식 원장님을 비롯하여 의사와 공중보건의 선생님들을 만난 경험은 의학공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한센병이 역사에 기록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약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센병이 등장하는 이집트 파피루스의 작성시기는 기원전 약 1500년부터 240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인도에도 기원전 약 600년경에 한센병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고, 알렉산더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로 쳐들어갔다가 유럽으로 방향을 튼 기원전 4세기에 역사에 확인할 수 있는 유럽 최초의 한센병 환자가 등장합니다. 기록으로 추정하면 한센병은 알렉산더의 군대를 통해 인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말기에 이르러 환자들이 흉한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신이 내린 벌로 생각했으며, 두창(천연두), 매독과 더불어 신체에 변형이 생기는 까닭에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는 신세가 되곤 했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한센병 환자를 건드리자 낫는 장면은 성서 내용을 잘 모르던 필자에게 기적과 의심이 동시에 솟아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말미인 13세기에 유럽에서 한센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대책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이 무서운 질병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었으므로 환자를 마을밖으로 쫓아내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마을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을 leprosarium(한센병 환자 수용소)이라 하며, 종교적 신념으로 이들을 보살피면서 평생을 바친 종교인들이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성서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본 라자루스의 이름을 딴 라자루스 수도회 소속 종교인들이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로 유명한 중세 이슬람 지역에서는 오늘날의 병원과 유사한 시설이 이미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병원의 역사에서 leprosarium을 병원의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현미경이 의학과 생명과학에 널리 사용되면서 세균과 같은 미생물 관찰이 가능해졌습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있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시설에 근무하던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 1841~1912)은 1871년 한센병에 환자의 조직세포에서 새로운 세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한센병이 피부접촉으로 전파되고, 환자를 소독하고 격리 치료하는 등 한센병 해결을 위해 공헌했습니다.


    그는 여러 한센병 환자의 결절에서 발견한 세균을 1873년에 처음 보고했습니다. 한센은 이 세균을 Mycobacterium leprae라 명명했지만 이 세균이 한센병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876년에 독일의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탄저의 원인이 되는 탄저균을 발견하면서 특정 세균이 특정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4가지 가설을 정립했습니다. 코흐는 이를 이용하여 1882년에 결핵균, 1883년에 콜레라균을 발견했고, 후대 학자들은 이 4가설을 토대로 수많은 감염병의 원인균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1879년에 한센은 자신이 발견한 세균을 나이저(Albert Ludwig Sigesmunt Neisser, 1855-1916)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한센균을 발견한 것은 한센이지만 이 세균이 한센병의 원인균임을 증명한 것은 나이저입니다. 그는 임질 원인균을 발견함으로써 과거에 매독으로 알려져 있던 성병이 매독과 임질이라는 두 가지 병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세균을 사멸할 수 있는 합성 화학요법제와 곰팡이가 함유하고 있는 물질인 항생제가 발견됨으로써 한센병 환자는 급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센병은 한센이 1873년에 나균을 발견하면서 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병만 한센병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즉 한센균이 발견된 경우에만 한센병이라 할 수 있지만 성서는 의학지식이 일천하던 시기에 증상만 보고 쓴 것이므로 성서에 leprosy라 표기된 나병이나 문둥병이 오늘날의 한센병과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978년에 영어로 발행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는 “leprosy”라는 단어 대신 감염병, 즉 “infectious disease”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표준새번역 한글성경에서도 “문둥병” 대신 “악성 피부병”이라는 영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일단 한센병이 발생하면 치료를 한다고 해서 변형된 부위가 원상태로 복구되지는 않지만 현재는 조기진단과 효과 좋은 치료제에 의해 환자가 크게 줄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한센병이 문제가 되는 나라는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20여개국 정도 있으나 점점 환자가 줄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폴레로(Raoul Follereau, 1903-1977)가 제창하여 1954년에 1월 마지막 일요일이 ‘한센병의 날’로 제정되었습니다. 폴레로는 1940년대부터 한센병 환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여 아주 호소력이 강한 글과 행동으로 한센병 환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46년에 한센병 환자들을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단체(Order of Charity)를 조직했고, 이것이 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라울 폴레로 재단”이 되었습니다. 그는 1977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센병의 날 제정, 미국 대통령과 소련의 당 서기에게 폭탄 하나 제조에 해당하는 비용을 기부하라는 편지를 보내는 운동을 전개했으며,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한센병을 거의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한센병의 날(world leprosy day)을 기념하여 1988년 1월 31일 파키스탄에서 발행한 우표에 “한센병은 치료 가능하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1916년 2월 24일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는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 수용하는 등 전국 곳곳에 환자촌을 조성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비인간적인 처사라 할 수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단지 그 마을에서 비인간적인 처사가 발생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헌신하는 의사상과 한센병 환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상(의사 포함)을 대조적으로 기술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센병을 거의 해결함으로써 소록도를 제외한 한센병 환자 마을이 거의 사라졌고, 한센병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잊혀져 가는 과거로 남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로 이 글을 읽기 시작하신 분이 있다면 앞에서 나온 시 두 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서정주와 한하운의 시를 읽으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한센병 환자를 바라보고 쓴 서정주의 시, 환자의 입장에서 쓴 한하운의 시를 대하며 인류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의사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마음의 태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병일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UT Southwestern Medical Center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Wellcome Unit for the History of Medicine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면서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네이버 프리미엄 컨텐츠(https://contents.premium.naver.com/medicalstory/knowledge/)에 의학역사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