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Vol.2 2023-09-06 2529
강신익 (부산대 교수)
공부는 무지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지를 깨달아 배움을 시작하고 새롭게 배워 아는 대로 살다 보면 생각과 마음이 스스로 그러해진다(自然). 공부는 자연을 배워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 일이다. 2년 가까이 온 세상이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아래 코로나19)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할 자연이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자연은, 자연의 정복자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과학과 현대인의 무지와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사태는 우리가 당장 극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잘못된 앎을 고치고 새롭게 배워야 할 자연이기도 하다. 이제 코로나19로부터 배우고 행해야 할 것들을 역사와 의학의 경험 속에서 찾는 공부를 시작해 보자.
인류의 역사는 늘 역병과 함께해 왔다. 약 1만 2천 년 전 무렵 농사를 짓고 한 지역에 모여 살게 되면서 역병의 유행은 더 빈번해졌다. 거의 모든 열량을 한두 가지 작물에서 취하게 되어 음식의 다양성이 줄고 필수 소량 원소의 섭취가 제한되면서 오히려 영양 상태의 균형이 무너졌다. 역병에 더 취약해진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야생동물을 길들여 함께 살게 되고 저장된 곡식을 탐하는 기생 동물이 들끓게 되면서 동물과 인간의 벽을 넘는 감염병도 많아졌다. 자연정화의 한계를 넘는 오물이 쌓이면서 해충과 병원체도 많아졌다.
전쟁과 교역을 통한 왕래가 잦아지면서 유행의 범위도 넓어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계적 유행으로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와 1918년 5천만 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이 있다. 14세기에 고려나 조선에 흑사병이 유행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스페인 독감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14만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세계적 유행이 똑같은 패턴으로 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중세 흑사병은 여러 해 동안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두 차례 유행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 이후 거의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중세의 흑사병은 유라시아 초원을 가로지른 정복자들이 생태계에 가한 충격이,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생태 파괴와 대규모 인구이동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완벽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누구나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세균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의 원인인 걸 알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원인균을 몰랐다고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흑사병이 유행할 당시 의사들은 새 부리 모양의 가면 속에 각종 향료를 넣어 공기를 정화시켰고,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 병이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질병의 원인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은 종교적 신념과 결합해 이교도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흑사병 유행 당시에는 유대인이 손쉬운 희생양이었다.
병원체를 특정하지는 못했어도 감염병 예방법을 발견해 상당한 효과를 보기도 했다. 두창(천연두)은 현대적 백신이 개발되기 훨씬 이전부터 효과적인 예방법이 개발되었던 감염병이다. 15세기 중국에서는 두창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피부에 낸 상처에 문지르거나 코로 흡입하는 예방법이 유행했으며 이 방법은 다산 정약용에 의해 조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인두법은 이후 더욱 안전한 종두법으로 발전했고 1979년 이후 새로운 환자가 발견되지 않은 두창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해롭지 않은 자연으로 전환된 유일한 감염병으로 선언되었다. 경험과 상식이 개발한 예방법을 과학이 이어받아 완성시킨 모범 사례다.
19세기에는 결핵과 콜레라가 주요 감염병이었다. 이 시기에는 감염병의 원인균들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지만, 정작 감염병으로부터 인구를 지켜준 것은 병원체를 직접 공격하는 의학적 개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하수도를 정비하고 주변을 청소하며 자주 환기를 하는 등의 일반적 공중위생, 그리고 영양과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사회적 대책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의학의 미시적 접근은 언제나 인간의 심리적 반응과 사회적 대책에 연결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감염병의 생물학적 원인은 세균과 바이러스일지 모르지만 그 병원균을 키우는 건 가난과 무지, 불평등과 무관심 같은 사회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당대 최고의 의학자 루돌프 비르쇼(Rudolf Virchow, 1821~1902)는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학”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19세기와 20세기는 의학의 성공스토리가 넘치는 시기였다. 특정 감염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그것들을 퇴치할 수 있는 소독과 위생, 백신과 항생제가 발명된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한계가 드러났다. 발명 초기의 페니실린은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효력을 발휘했지만, 머지않아 세균들은 그 살균력을 피하는 교묘한 기술을 터득했다. 바이러스는 다양한 변이 종을 진화시켜 과학과 인간을 조롱했다. 병원체와 인간 사이의 무한 군비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서양인들은 19세기에 와서야 의학이 정치학이라는 과격한 주장으로 의학의 사회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질병과 사람과 사회를 아우르는 생물-심리-사회 모델을 개발했지만, 그 방법과 사유는 여전히 요소 환원적이며 초점은 언제나 사람이나 나라가 아닌 질병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 의학에서 의(醫)의 대상 속에는 이미 병(醫病, 醫疫)과 사람(醫人)과 나라(醫國)가 포함되어 있었다. 병과 사람과 나라를 다스리고 보살피는 일은 치자(治者)와 의자(醫者)의 공통 과제였다. 우리가 코로나19와 싸우고 사귀면서 그것과 더불어 하나의 자연이 되기 위해서도 이 세 가지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질병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닌 나름의 ‘자연’인 병과 사람과 나라를 다스리고 돌보아 새로운 자연으로 만들어가는 전략 말이다.
역병을 다스리고 돌보기 위해서는(醫疫) 그것을 막는 방역(防疫)과 그것에 적응해 새로운 몸으로 변해가는 면역(免疫)의 전략이 활용된다. 거리두기와 개인위생으로 병원체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은 방역이고 백신을 통해 바이러스와 싸우고 사귀는 것은 면역이다. 둘 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적 대응 전략이다. 병원체와의 접촉을 피하는 방역은 이해하기 쉽다. 개인은 접촉을 피하고 사회는 접촉의 기회를 줄이는 대책을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 병원체에 이기는 체력과 체질을 만드는 면역은 좀 더 복잡하다. 우리는 항원과 항체가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하는 기계적 면역 모델에 익숙하다. 하지만 현대 면역학의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면역은 단순한 공격-방어가 아니라 면역세포와 면역물질들의 네트워크가 항원을 만나 혼란을 겪다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병원체인 바이러스도 변하고 숙주인 인간의 면역 네트워크도 변한다. 면역은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자연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도 생명인 만큼, 그 마음도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다급한 위험은 무조건 피하고 적령기에 이르면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누려 하는 것도 이렇게 진화한 마음이다. 하지만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그처럼 ‘빠른 마음’이 오히려 생존과 번영에 방해가 되는 상황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진화한 것이 이치를 따져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느린 마음’이다. 세계적 유행 초기에 특정 지역을 감염원으로 지목하여 비하하고 혐오했던 사람들은 빠른 마음이 강한 사람들이며, 이후 지속적으로 감염 경로를 추적해 감염자를 격리하고 돌보면서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을 기다렸던 건 느린 마음의 소산이다. 빠른 마음은 병원체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역에 유리하고 느린 마음은 병원체를 품어 새로운 자연을 만드는 면역에 유리하다.
코로나19의 충격을 겪으면서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고 길들여가면서 변해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함께 살아가는 다른 몸과 마음들과의 연결망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으로 구현된다. 나라마다 대응 방식이 다르고 감염의 확산 양상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건,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들의 연결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적 유행 초기에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를 거부했던 이른바 선진국 시민들은 각자의 몸과 마음이 독립이라는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유행 초기부터 국경을 철저히 틀어막고 외출조차 금지했던 나라들의 정책은 집단을 개인에 앞세우는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통제적 방역 대신 집단 면역을 목표로 삼은 스웨덴 같은 나라도 있었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얼마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집단주의 정책인 셈이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긴 해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방역이 무척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철저한 검사와 추적,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는 아량, 확진자와 격리자에 대한 체계적 돌봄의 체계, 그리고 이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 연결망의 확보 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개인도 집단도 아닌 또는 개인과 집단을 모두 포괄하는 “관계”의 사유에 바탕을 둔 마음이고 정책이다. 있음은 언제나 더불어 있음이라는 걸 몸으로 아는 우리들이다.
코로나19는 아마도 온 인류를 심각한 곤경에 빠뜨린 21세기의 대표 유행병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고통스럽게 그 병을 앓았으며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건전한 정서 발달이 지연되었고 영업을 하지 못한 소상공인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휴식 없이 일해야만 하는 의료인 특히 간호 인력의 고통도 심각하고 공공의료의 확충도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 싸움은 아직 진행형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중증도가 낮아짐에 따라 이제는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백신은 바이러스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바꿔 서로 친해지도록 하는 인위적 자연이다. 바이러스는 각종 변이종을 진화시켜 인간의 공격을 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와 더불어 사는 자연 속에 포섭될 것이다. 지금은 싸움 중이고 화해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제는 무조건적인 적대를 넘어 화해의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백신은 우리들 자신을 변화시켜 바이러스와 사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는 변이 종을 진화시켜 인간의 공격을 피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간과 공존하는 길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투적 칼춤을 추는 바이러스의 관중이며 희생자였지만, 이제는 그 춤사위에 감응하여 전체 춤판을 새롭게 기획하고 참여하는 춤꾼이 되어야 할 때다. <수궁가>의 범은 온갖 위세를 떨며 내려오지만 자라의 순진한 공격에 혼비백산한다. 그 모습을 담은 춤이 장안에 화제다. 범의 위엄과 위선을 재기발랄한 해학으로 비웃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모습을 흉내 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어색한 듯 어우러지는 춤사위는 우리가 코로나19-19와 함께 추어야 할 춤을 연상케 한다. 우리가 코로나19와 함께 추어야 할 춤 속에는 우아한 어울림도 명확한 질서도 없다. 스스로 그러한 삶의 역동성이 담긴 어색한 듯 아름다운 춤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을 동원해 코로나19에 관한 무지를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또 다른 무지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그들이 살아가면서 추는 춤의 어색한 아름다움을 깨닫고 즐기는 것이 진짜 공부 아닐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과 불완전함과 불확실성을 견디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일 터이다.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추상적 지식보다는 일상적 삶에 봉사하는 의학을 지향한다. 15년간 치과의사로 살다가, 마흔이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의학 관련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지금은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있으면서 의대, 치대, 한의대 학생과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 특히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공부를 즐겨 한다. 지은 책으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몸의 역사』,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 남았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