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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Education

Issue Vol.2 2023-09-06 2964

나선삼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객원교수)

인류학에서 바라본 감염병

    이 글은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먼저 영장류인 인간과 그들의 사회 및 문화를 연구한다고 알려진 인류학이 근대에 태동한 배경과 학문의 연구 주제와 방법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섹션에서는 인류학내에서 생물학적 현상이자 액운으로서 바라본 질병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번째 섹션에서는 전염병에 초점을 맞추어, 전염, 방역, 치료의 각 단계별로 인류학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지견을 역사적 실례를 통해 탐구해 봅니다. 끝으로 의학에서의 과학주의에 대해 짧게 언급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 인류학이란?


  가. 근대 인류학의 탄생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의학과 비교할 때 인류학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학문입니다. 인류학 (anthropology)이라는 용어는 인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nthrōpos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y가 결합된 것입니다. 곧 인간에 대한 학문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중후반에 인류학이 발생된 데에는 두가지 학문적, 사회적 배경이 있는데 하나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 의해 제창된 진화론이며, 둘째는 유럽국가들의 식민지 확장입니다. 진화론은 '적자생존'이라는 테제로 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생물학에 공고한 학문적 지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류학자라고 하면 보통 침팬지와 살면서 그들을 연구했던 Jane Goodall을 떠올리게 되죠? 진화론을 기반으로 영장류의 생태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 생물인류학 (biological anthropology)이 이렇게 태동합니다.


    인류학의 다른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사회문화인류학 (sociocultural anthropology)은 19세기 유럽의 식민지 확장에 배경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이양선이 출몰했죠. 서구인들은 식민지개척을 통한 비(非) 서구 문명과의 접촉을 넓히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학문적으로도 체계화할 필요를 느낍니다. 초기에는 선교사나 탐험가들의 서신을 통해, 나중에는 식민지 행정관료, 교사, 의사 등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현지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정리하게 됩니다. 당시는 생태계의 다양성이 종의 진화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학문의 신(新) 조류였으므로, 문명의 다양성도 자연스럽게 사회의 진화라는 틀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이들은 문화 전파(cultural diffusion)라는 개념도 도입하는데 이 설명체계에 의하면, 근대국가의 모습을 이룬 유럽은 진화의 정점에 아프리카의 ‘원시적’, ‘야만적’ 문명은 맨 바닥에, 아시아는 아래쪽 어딘가에 위치하며, 문명의 다양성은 삼투압처럼 성숙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파되며 형성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럽중심시대에 이는 지배적 문명이론이 되었는데 학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이론이 식민주의에 봉사하였을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에서는 자료수집을 위해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 시기의 학자들을 암체어 인류학자(armchair anthropologist)라고 부릅니다.


  나. 사회문화인류학의 변신

    하지만 20세기 초가 되면서, 인류학은 변신합니다. 야만인(savage)라는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학문의 내용은 비(非) 유럽주의로 변모하게 되는데 변화의 핵심에는 필드웍(fieldwork)이라는 연구방법론이 있었습니다. 간접 자료에 만족하지 못하던 일군의 학자들이 원주민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수년간 현지인과 그들의 언어로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경제 및 정치, 친족관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기존 자료와 비교 분석합니다. 그 결과 기존의 암체어 인류학자들이 내린 것과는 사뭇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비(非) 이성적이라고만 여겼던 원주민들의 삶의 양식이 서구 사회 못지않은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를 예고했다고 평가받는 옥스포드의 에반스 프리차드(Evans-Pritchard, 1902-1973, 아래 에반스 프리차드)경(卿)의 『아잔데족의 마술과 신탁 그리고 주술, Witchcraft, Oracles and Magic among the Azande』(1937) 라는 민족지[1]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수단의 아잔데족과 함께 살면서 해명되지 않은 불운의 사건을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신탁(神託)이 운용되는 것을 목도합니다. 필드웍 중에 그는 곡물창고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 무너진 창고에 깔려 사망한 남자의 사망원인을 밝히려는 신탁의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혹시 아잔데족이 곡물 창고의 안정성, 곧 흰개미가 창궐하고 나무가 썩어서 창고기둥이 부실해진 것과 같은 물리적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아닌지 인터뷰를 통해 꼼꼼히 체크합니다. 혹은 사망사건이 마법의 영향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그들의 ‘미신적 성향’에서 기인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본인이 신탁에 참여해 보며 탐구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잔데족이 창고의 안정성에 대한 물리적 이해가 부족하지 않고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미신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탁을 통해 알아내려고 한 것은 ‘하필 이 시간에 그에게 불운이 닥쳤는가?’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은 삶에 존재하는 근본적 불확실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신탁과 연관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생긴 사회적 균열을 봉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잔데족의 사회가 서구사회만큼 이성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에반스 프리차드의 이 연구는 수년간의 필드웍과 참여관찰[2]을 통해 얻은 자료에 근거하였으므로, 2차 자료에만 의존했던 기존의 인류학자들의 주장보다 훨씬 신뢰가 높았으며 통시성(diachronicity)과 공시성(synchronicity)을 포괄하는 총체적 접근이라는 20세기 사회인류학의 흐름을 만들어 낸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2. 생물학적 현상으로서의 질병과 액운으로서 질환


    이제 질병의 문제로 옮겨볼까요? 생물인류학과 사회문화인류학의 두 흐름이 존재하지만 전체론적 접근(holistic approach)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생물인류학자는 질병을 진화론의 틀 안에서 사회문화인류학자는 액운(misfortune)의 일종으로서 사회적 속성에 중점을 두지만 둘 모두 긴 시간의 참여관찰을 통해 자료를 얻고 통시적 공시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생물인류학적 연구는 유전체 분석에 기반하여 동일한 유전형을 가진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제2형 당뇨병 및 비만에 있어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하는 표현형의 패턴 분석, 말라리아 창궐 지역에서 발생하는 진화적 적응의 예로 낫적혈구빈혈의 발생, 수렵채집기에서 농경기로의 이행에 의해 발생하는 아래턱의 협소화와 치아의 밀집, 그리고 위생가설에 입각한 자가면역질환의 진화론적 설명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들에서는 고고학적 및 생물학적 증거뿐 아니라 수렵채집의 문화를 영위하고 있는 부족에 대한 실증적 연구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생물인류학자가 수렵채집 부족인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 인근 쿵족(!Kung people)이 식사 후 남기고 간 재를 뒤엎고 있다면, 그는 섭취된 음식의 종류와 칼로리 양, 부족원의 이동 시간에 따른 에너지 소비량에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 사회문화인류학자라면 제례 주기, 화덕의 모양과 만드는데 쓰인 재료, 음식 준비에 있어 성별, 지위에 따른 역할분담 등에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가. 의료인류학

    이제 사회문화인류학의 관점으로 옮겨가 볼까요? 20세기 초 인류학의 변모로 인해 사회학(문명사회연구)과 인류학(비문명사회연구) 사이에 존재했던 연구대상에 따른 역할분담이 없어집니다. 자연스레 질병에 대한 연구의 폭도 넓어지며 미국을 중심으로 ‘의료인류학(medical anthropology)’이라는 분야도 생깁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3]에 입각하여 ‘교정’의 대상이라 여겨지던 3세계의 의료의 모습과 치유행태의 기술에 집중했습니다.[4] 하지만 70~80년대로 옮겨오며 체계화된 이론과 정교한 행위와 전승 방식을 갖춘 의료체계[5]인 아유르베다나 중국의학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6] 한편 알란 영(Alan Young)이나 바이런 굿(Byron Good, 아래 굿)같은 인류학자는 정신의학의 영역에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인 하버드의 아서 클라인만(Arthur Kleinman, 아래 클라인만)이 대만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해, 중의학, 서양의학, 무당, 약국 등이 뒤얽힌 복합적 치유체계 안에서 다양한 자격을 지닌 치료자들이 역할하는 모습을 정신의학적 케이스 분석과 민족지적 기술을 결합하여 생생하게 그려낸 책을 출간하였으며, 네덜란드에서는 반 데르 기스트(Van der Geest)가 암스테르담의 병원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를, 그리고 캐나다의 마가렛 락(Margaret Lock)이 일본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해 전통의학이 의사와 환자에게 받아들이고 이용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합니다. 이로 인해 보건의료에 한정되어 있던 의료인류학은 본격적으로 ‘의학 (medicine)’과 조우합니다. 핑퐁 외교로 중국이 개방되자 본토에서의 필드웍을 기반으로 의료인류학은 한 차원 더 성장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 장 랭포드(Jean Langford) 같은 학자는 아유르베다의학에 내재된 탈(脫)식민지성까지도 탐구할 정도로 이론과 주제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7]


  나. 질병의 사회적 속성

    질병에 대한 인류학적 작업의 특징은 질병에 내재된 사회적 속성에 주목하는 것에 있습니다. 클라인만은 앞서 언급된 책에서 ‘tangi(童乩)’라고 불리는 대만 무당의 신내림의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환 장애와 심한 우울증을 겪는 환자의 상태가 의례에 참여하면서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빅터 터너(Victor Turner, 1920-1983, 아래 터너)가 1960년대 아프리카 뎀부(Ndembu)족에 대한 연구에서 한 젊은이가 겪던 만성피로와 우울증세가 집단 치료를 통해 개선됨을 보여준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8] 이 청년은 오랜 이주 노동 뒤에 귀향하였는데 모친(母親)계 부족구성원과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족 원로인 치료사는 액운을 일으키는 조상의 이빨을 제거하는 ‘이함바(Ihamba)’라는 의례를 시행하는데, 이에 부족 구성원 전체를 참여시킵니다. 터너는 청년과 부족원들 사이의 갈등이 성공적으로 봉합되는 데 있어 의례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빨을 제거하는 행위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로서 역할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 아래 레비스트로스)가 1949년에 출간한 논문에서 파나마의 쿠나(Cuna)족이 난산을 겪는 산모에게 들려주는 샤먼의 노래를 분석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노래에는 쿠나족이 모시는 여러 신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레비스트로스는 주술사가 ‘험한 산을 넘고 역경을 이겨내는’ 부족신의 모습을 통해 산모의 의식을 지배하는 집단 무의식의 상징 세계로 접근함으로서 ‘산을 넘지 못하고’ 산도에 걸려있는 아이의 출산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9] 종교인류학의 배경을 가진 굿은 1977년에 발표된 이란 여성들의 심장의 과도한 두근거림과 부인과 증상을 주소로 하는 증후군에 대한 논문에서[10], 이 증후군의 중심에는 이란 사회의 가부장적(家父長的) 구조가 존재한다고 결론짓습니다. 환자들에 대한 참여관찰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요인과 증상이 가진 의미의 연결망(semantic network)을 분석한 결과였고, 이 연구를 통해 질병의 이해에 있어 생의학적 설명뿐 아니라 의미의 연결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합니다.


  다. 신념의 문제와 의료다원주의

    질병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이번에는 의학이라는 지식체계 곧 믿음의 체계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과학지식이 어떻게 믿음의 범주에 있는지에 대해 반문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지식이 가진 높은 설명력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코로나 세계적 유행 초기에 모델링에 기반하여 집단 면역을 주장했던 나라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함에 따라 집단면역이라는 개념도 추후 재설정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지식체계는 전문가집단의 합의로 이루어지며 기존의 체계[11]가 통째로 폐기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합니다.


    의사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믿음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자신의 설명을 들은 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세련된 설명체계를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환자들의 교육수준이 높지 않아 그럴 수 있다구요? 사회학자 메레디스 맥과이어(Meredith McGuire)가 미국 동부의 중산층 동네에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필드웍을 시행한 바 있는데, 결과는 인류학자 머레이 래스트(Murray Last)가 나이지리아 말룸파시(Malumfasi)라는 곳의 한 시장에서 행한 연구와 일치했습니다.[12] 교육, 경제 수준 그리고 종교에 상관없이 환자들은 어떤 체계가 설명력이 높은지에 대해 의외로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신체 증상과 변화를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체계를 그때그때 자의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유르베다, 서양의학, 약물치료, 주술요법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나이지리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부자 동네에 사는 과학자, 박사, 예술가들도 크리스탈 힐링, 요가, 자석 치료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를 의료다원주의(medical pluralism)라고 하는데, 이는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다원적(多元的)이라는 것도 의미하지만 환자입장에서 한가지 치료 체계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시장경제체제의 우리나라나 미국의 경우는 그렇다 쳐도 무상의료 국가인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생의학(biomedicine) 이외의 다양한 의료서비스와 시술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니 인류학자들의 이런 주장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전염병에 대한 인류학적 이해


    질병에 대한 일반적 관점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전염병과 관련한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겪는다는 점에서 전염병에서는 사회성과 환경이 더 강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전염, 치료, 방역으로 구분하여 인류학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을 다뤄 보겠습니다.


  가. 전염(contagion)

    전염과 관련해서는 동양에서 토사곽란(吐瀉癨亂)으로 알려진 콜레라를 예로 논의해 봅니다. 약 1503년경에 유행의 예가 처음 기록된 후, 콜레라는 1800년대 초반 세계적 유행으로 발전하였고 그 후 여덟 번 창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3] 심각한 설사와 구토, 근육 경련에 의한 급격한 탈수로 수시간 만에 사망에 이르는 질환입니다. 첫번째 유행(1817-1823)은 인도에서 시작하여 남아시아, 남태평양, 중국, 이집트로 퍼졌고, 두번째 유행(1826-1851)에서는 유럽, 북미, 남미 등 전세계를 아우르게 됩니다. 세번째 유행(1852-1859)에서는 전파기전(傳播機轉)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가 마련되는데, 1853년 8월 31일에 런던에 7명의 남자에게 콜레라 증세가 나타났을 때입니다. 역학조사에 나선 의사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가 브로드 가(街)에 있는 지하수 펌프에서 나온 물을 마신 사람들에게만 콜레라 증세가 나타난 것을 알아냈습니다. 같은 동네이지만 양조장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무료로 제공되던 맥주를 마셨기 때문에 콜레라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발병 1주일만인 9월 7일에 브로드가의 지하수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자 놀랍게도 확산이 멈춘 것입니다.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에 의해 콤마 모양의 균이 동정된 것은 다섯번째 유행(1881-1896) 때였고 이 균이 콜레라 증세를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된 것은 6차 유행(1899-1923) 때입니다. 1959년에는 인도 학자 삼부 나스 데(Sambhu Nath De, 1915-1985)가 이 균이 소장에서 엄청난 양의 진액을 분비하게 하는 독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밝힙니다. 6차 유행 기간 동안 50-70%에 달했던 치사율은 1959-1961년에 수분, 당, 염분을 보충하는 경구수액요법(oral rehydration solution-ORT) 이 등장하며 급감합니다. 이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서 1961년에 발생한 7차 유행에서는 사망자가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1970년대에는 분자차원에서 탈수의 기전이 밝혀집니다. 한편 1991년에 페루에서 발생한 8차 유행에서는 치사율이 0.69%까지 낮아졌는데, 이와 동시에 새로운 콜레라 종인 Vibrio Cholerae 0139가 남아시아에서 발견됨에 따라 8차 세계적 유행은 기존의 콜레라균과 새로운 균이 겹쳐 발생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병리 기전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2010년 아이티공화국에 대지진이 발생한 후 약 470,000명이 감염자와 6,6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주된 전파 기전은 대변-구강 경로(oro-fecal route)이며, 하수 유입이 쉬운 근해(近海)에서 콜레라균이 군집을 형성하다 어패류를 통해 인체 내로 유입되며, 초기 3일 동안 한 명이 설사를 통해 쏟아내는 분비물에 포함된 균이 무려 천만 명을 감염시킬 정도의 전염력을 지닌다고 합니다.


    생물인류학에서는 역학적 삼각형(epidemiological triangle)이라 불리는, 원인인자, 사람, 환경의 상호관계 안에서 자연선택이 전염병 창궐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합니다. 잘 알려진 예는 말라리아가 잦은 곳에서 빈발하는 낫적혈구빈혈입니다. 인체가 적혈구내에서 성장하는 말라리아 유충의 생활사를 방해하기 위해 숙주 역할을 하는 적혈구 자체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며, 이는 전염병에 대해 인체가 진화적으로 대응하는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8차 유행에서 발견된 새로운 콜레라균과 관련하여 원인인자 입장에서 가설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기존 균주에 비해 독성이 훨씬 덜한 반면 장기간 설사를 일으키고, 체외에서 오래 생존하며, 면역 현상을 전혀 발생시키지 않고, 음식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새로운 균체의 발생은 콜레라균 입장에서 보면 진화적으로 적응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난 400년간 콜레라균의 입지가 많이 약화되었는데, 이는 짧은 시간에 사망에 이르는 급격한 숙주 반응에 의해 방역이 촉발된 결과이므로, 콜레라균이 생태계내에서의 번식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독성은 약화시키되 전염 경로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것이지요. 오미크론 변이를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 치료(treatment)

    역학적 삼각형의 다른 한 축인 환경에 대해서는 변수가 너무 많아 생물인류학보다는[14] 사회문화인류학자들의 분석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는 치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항생제만으로 콜레라의 유행을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전염병은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사회시스템이나 환경이 파괴된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식이 자원의 부족으로 부시미트(bushmeat) 라고 불리는 야생동물을 섭취함으로서 전 세계로 퍼질 뻔한 에볼라출혈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전염병의 대응에서 정치경제적 요소가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앞서 언급한 클라인만과 굿의 제자인 의사 출신 인류학자 폴 파머(Paul Farmer, 아래 파머)는 아이티공화국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한 나라가 질병 부담을 높은 수준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겪은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가난의 질병이라고 불리우는 ‘결핵’을 언급합니다. 광부들의 진폐증과 함께 산업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질환은 산업혁명 전에도 흔했습니다. 창백한 얼굴과 토혈(吐血) 그리고 마른 몸이 아름다움을 일으킨다고 여겨져 여성들이 한 때 앓고자 한 질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침방울을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결핵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밀집된 주거 및 노동환경으로 인해 산업화가 한창이던 18~19세기 영국 사회를 휩쓸면서 많은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에드윈 채드위크(Edwin Chadwick, 1800-1890)과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등이 주도한 보건위생 및 사회개혁운동으로 환경이 개선되며 사망률도 감소하게 됩니다. 이는 항생제가 발명되기 훨씬 전 일인데, 이런 역사적 교훈은 돌이켜보면, 결핵의 치사율은 항생제만으로는 낮추기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파머는 아이티공화국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국가 기능의 약화로 항생제를 꾸준히 복용하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는 케이스들을 많이 접합니다. 집단 전체로 볼 때 이는 항생제 내성균의 발생을 촉진시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라의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국가 실패의 징후로서의 결핵 창궐의 뿌리가 17세기부터 유럽, 아메리카 대륙, 서아프리카를 기점으로 행해진 노예 수입의 종착점이자 중간지 역할을 한 아이티의 식민주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곳은 설탕 생산의 중심지로 현지 노동력으로서 노예들이 필요했고, 나중에는 미국 남부의 면화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공급하기에 좋은 지점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발발과 함께 아이티는 운 좋게 1804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엄청난 빚을 졌고, 무려 100년이 넘게 프랑스와 미국의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습니다. 애초부터 아이티는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라는 명예에 걸맞은 발전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국민들보다 노예들에 대한 노동 착취로 성장한 플란테이션의 오너들과 사업에 투자한 서구인들의 입장을 중시해 준 결과입니다. 결국 제국주의 시스템과 착취적 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적 구조가 아이티 주민들과 후손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슷한 역사적 운명을 겪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다. 방역(management)

    방역과 관련해서는 격리(isolation)가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전염병 관리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격리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격리된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사회적 죽음을 맞는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이들에게는 사회적 의무가 면제되고 권리가 박탈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만나보았던 터너는 개인이나 집단이 일상의 단계에서 벗어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이런 상태를 경계성(liminal state) 혹은 리미날리티(liminality)라고 명명했습니다. Liminal이라는 말이 문턱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방의 안도 밖도 아닌 중간의 단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터너는 이를 구체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betwixt and between)’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는 이 리미날리티에서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공동체 의식[15]이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격리와 거리두기를 경험하면서 일상과 협력의 중요성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격리의 의례는 무언가에 의해 오염이 되었거나 생애주기를 지나면서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 모호해질 때 행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월경 오두막(menstruation hut)이 있는데, 생리를 하는 여성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이 제도가 존재하는 배경에는 생리혈을 오염물질로 보는 이유도 있지만, 생리를 하는 여성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인식을 치르는 아이들을 수일 혹은 수개월간 공동생활을 시키면서 통과의례를 거친 후 어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한 후 사회로 복귀시키는 의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격리의례동안 여성이나 아이들은 사회구성원로서의 의무와 권리에서 벗어납니다. 정상적인 몸의 생리 활동을 겪는 여성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 기간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통제된 여성들에게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초경을 맞이한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해주는 장소로서의 순기능도 합니다. 성인식에 참가한 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성인식 과정 중에 자신의 이름마저 빼앗기고 힘든 일도 겪어내야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또래들 간에 동료의식이 싹트고 이는 부족사회를 지탱하는데 두고두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복잡했던 일상은 단순화되고 사회적 자아가 소멸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코로나가 종식되었을 때 우리가 겪었던 동료 의식도 사회를 위한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4. 나가기: 의학에서의 과학주의


    지금까지 질병과 전염병에 대해 인류학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먼저 근대인류학의 탄생과 생물인류학과 사회문화인류학의 학문적 특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질병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현상으로서 진화론적 관점을 그리고 액운의 일종으로서의 사회적 속성을 중시한다는 점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생의학적 이해 방식이 왜 절대적이지는 않은지에 대해 논의했고 이어서 의료다원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전염병을 전염, 치료 및 방역의 단계로 나누어 콜레라와 결핵의 역사적 실례와 격리행위를 중심으로 여러 이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과학주의(scientistism)에 대한 비판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과학주의란 자연과학의 방식과 이론을 타 영역에 무리하게 적용시키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앞서 인류학은 통시성과 공시성 모두를 추구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는 의료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됩니다. 한국의 의사직군은 전문화 과정, 법체계 등으로 볼 때 사실상 생의학적 체계에 포섭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서양 해부생리학에 기반해 인체와 질병을 이해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과학주의적 경향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참여관찰을 진행한 펄 카츠(Pearl Katz)의 연구[16]는 의학 내에서 과학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할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구체적으로 멸균이라는 과학적 이상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실천되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수술실 내에서 오염구역과 멸균구역이 구분되는 것에 주목하는데, 재밌게도 수술 전 준비, 피부절개, 처치 및 봉합으로 이뤄지는 수술의 의례가 행해지면서 절대적인 것 같던 소독된 것과 오염된 것의 구분이 스탭들에 의해 수시로 재규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에 따르면 ‘환자의 피부는 수술 전에 소독약으로 깨끗이 씼었음에도 불구하고, 절개 과정에서는 소독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수술 전에는 소독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던 환자의 피와 내부 장기는 일단 수술이 시작되면 소독되었다고 간주’[17]되며 피부 절개 전까지는 철저하게 지켜지던 두 구역의 구분이 봉합의 과정에서는 모호해졌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이마저도 완전히 무너짐을 보여줍니다. 그는 더 나아가 수술실에서 멸균과 오염이 수시로 재정의되는 과정에서 직종별 위계질서, 법적 책임, 상황적 편의성 등 과학적 요소만이 아닌 사회적, 도덕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밝혀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멸균의 이상만을 좇는다면 대부분의 수술은 실패할 것입니다. 집단 면역의 과학을 충실히 따르고, 마스크의 예방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나라에서 코로나 초기에 희생자가 많았던 반면, 경험적인 결과를 토대로 마스크 쓰기에 전념하며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과학주의의 덫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과학적 방법을 존중하되 신봉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나선삼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객원교수

경희대에서 한의학으로 학사, 영국 워릭대에서 철학과 정신건강으로 석사, 옥스포드대에서 의료인류학 석사와 사회인류학 박사를 취득했다. 의사의 정체성, 요양병원, 의료비즈니스에 관한 논문을 출간했고, 현재는 재활로봇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 의료를 자본주의 발달궤적에서 바라보는 책을 집필 중이며, 옥스포드 의과대학 정신과에도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