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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Education

Issue Vol.2 2023-09-06 2810

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

팬데믹에 대한 까뮈의 예언과 성찰


 

    1957년 불과 44세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 아래 까뮈) 는 특별한 작품 『페스트』를 남겼다. 참혹한 감염병에 대한 내용이므로 다분히 의학적이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논하다보니 철학적이기도 한 이 소설은 그의 사후 60년이 더 지난 지금 코로나 19를 견뎌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세계적 유행에 대한 까뮈의 생각과 우리들의 현실을 살펴보자.


    연대기로 쓰인 이 이야기는 프랑스 식민지령인 알제리의 주도 오랑에서 시작된다.


    194X년 4월 16일 출근길에 젊은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계단에서 죽은 쥐를 본다. 수위에게 말하자 누군가 장난으로 가져온 것이라 펄쩍 뛴다. 건물을 잘 관리한다는 소리겠지만 의사는 퇴근길에 주둥이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를 또 보게 된다. 의사의 아내는 폐병으로 일 년 째 병석에 누워 있다가 쥐가 발견된 다음날 요양소로 정양을 떠난다. 역까지 아내를 배웅하고 오던 길에 리유는 열 마리도 넘는 쥐의 사체를 본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부터 쥐들이 떼를 지어 거리로 나와 죽는다.


    4월 28일, 하루 동안 죽은 쥐의 숫자는 8천 마리가 넘는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모르기에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13일째 날 죽은 쥐의 숫자는 감소되었으나 그걸 치우던 수위가 병들게 된다.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 임파선에 멍울이 지고 사지가 부어오르며 온몸에 반점이 돋아나면서 죽을듯한 통증을 호소한다. 열은 대번에 40도를 넘으며 불그레한 담즙을 토해내고 끊임없이 헛소리를 하다 발작을 일으키며 숨이 끊어진다.


    리유는 시체를 격리시키고 보건위원회를 소집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시킨다. 다른 의사들은 선뜻 ‘페스트’라고 진단하기를 주저하지만 리유는 병명을 무어라 부르던 간에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취하는 예방조치를 적용하여 오랑시민 20만 명을 보호하자고 주장한다.


    리유가 열병환자를 격리시키고 사타구니의 멍울들을 절개하여 피고름을 짜내고 파리에다 면역 혈청을 주문하는 등 백방으로 애쓰는 동안에도 사망자 수가 점점 늘어나 30명에 이른다. 마침내 지사로부터 공문을 받는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봉쇄하라”


    이때부터 페스트는 시민 전체의 문제로 대두된다. 시민들은 감금되고 유폐되어 기약 없는 귀양살이에 들어가 제자리에 앉은 채 죄수와 유형수들의 고통을 맛보게 된다.


    취재 차 잠시 오랑에 들른 신문기자 랑베르는 이 돌발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닌데다 파리에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온 그로서는 서둘러 돌아가겠다는 일념뿐이다. 그는 리유를 찾아와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부탁한다. 하지만 의사로서 그런 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도 없거니와 써 준다한들 효력도 없다. 도시의 성문은 편지조차 왕래가 차단된 채 철저히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랑베르는 도와주지 않는 의사를 원망하며 관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끊임없이 탈출을 꿈꾼다.


    한편 신망 높은 신부 파늘루는 열렬히 설교를 한다. 페스트란 신이 내리신 인간에 대한 징벌이고 이 재앙이 도리어 인간을 향상시키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페스트에도 그것대로의 유익한 점이 있어서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군중들은 신부의 설교에 술렁이지만 리유에게 종교는 관심 밖이다. 그는 “병고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치료부터 할 것”이라며 신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이 치료란 의사의 신념인 ‘반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위가 시작된 6월에는 매주 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다. 도시는 온통 절망에 사로잡히고 시민들은 향락에 빠져 들어간다. 밤늦은 시각에 중심가에는 청춘 남녀들이 열정을 불태우며 도덕이 점점 헐렁해진다.


    그 중엔 이 재앙이 오히려 행복한 사람도 있으니 밀매업자 코타르다. 그는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 체포될 처지라 목매달아 죽으려 시도했던 인물이다. 요행히 죽기 전에 살아난 코타르로선 페스트가 퍼져 도시가 마비되자 안도가 된다. 혼자서 죄수가 되는 것보다 모든 사람과 함께 갇힌 것이 좋은 것이다. 더욱이 그는 암거래를 통해 호황을 누리고 있으므로 내심 페스트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에 의사를 도와주는 인물로 타루가 있다. 그는 차장검사의 아들로 열일곱 살 때 법정에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주장하는 아버지의 논고를 듣고는 구역질이 나서 가출을 해버렸다. 그는 그 이후로 줄곧 페스트를 앓아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타루는 자원봉사자를 모아 보건대를 조직하는데 앞장선다.


    또 페스트와 싸우는데 공헌한 사람 중에는 시청 말단 서기 그랑도 있었다. 그는 가난한 나머지 결혼생활도 깨졌지만 보건대에서 환자 등록이나 통계 작성 등으로 큰 도움을 준다.


    여름 내내 맹위를 떨치던 페스트는 묘지와 화장터를 포화 상태로 만든다. 다행히 10월 하순에 면역혈청이 완성되어 이를 판사의 어린 아들에게 첫 시험을 해 본다. 그 혈청은 명백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투여받은 아이는 그 효과 때문에 다른 환자들보다 더 오랜 시간 고통을 겪으며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유가 신부에게 격렬한 어조로 소리친다. “허, 이 아이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신부님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신부는 의사의 비난에 당황해하며,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도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고 답하자 리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사랑을 거부하겠습니다.”


    아이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이후, 파늘루 신부도 조금씩 변해간다. 설교 태도도 점차 부드럽고 신중해지며 주저하는 빛을 보인다. 신부도 병이 들었지만 끝까지 진찰을 거부하다가 숨을 거둔다.


    추위가 오면 페스트가 물러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12월이 되어도 역병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람이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도시 전체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도 지옥의 명절이 되고 만다. 성탄절에 말단 서기 그랑은 거리를 떠돌며 옛 사랑을 그리워하다 쓰러진다. 그도 페스트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리유와 타루가 열심히 간병한 결과 병을 이겨낸 사람이 된다.


    이윽고 쥐들이 다시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월이 되자 사망자 통계표에 하향곡선을 보인다. 그런데 이번엔 타루가 아프다.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혈청주사 맞는 걸 소홀히 한 결과 페스트에 패배당한 것이다. 타루가 죽은 다음날 리유는 아내의 부음이 담긴 전보를 받는다.


    마침내 2월의 화창한 아침, 오랑 시의 문이 활짝 열린다. 밤낮없이 성대한 축하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이별을 참고 지냈던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서 뜨겁게 재회한다. 기자 랑베르의 아내가 제일 먼저 찾아온다.


    페스트가 만연한 동안 밀매업으로 이득을 많이 본 코타르는 병이 물러갈 무렵부터 안절부절못하더니 결국 경찰에게 연행되어 간다.


    리유는 마지막에 이 연대기를 쓴 장본인이 자신임을 밝히며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점은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점이라 말한다. 작품은 이런 경고로 끝을 맺는다.


    페스트는 역사상 30차례나 발생하여 1억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재앙이다. 하지만 원인균이 밝혀지고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20세기 이후에는 보기 어려운 전염병이 되었다. 그런데도 까뮈가 페스트에 의한 판데믹의 상황을 설정한 것은 마치 오늘날의 코로나 시대를 예견한 것만 같다.


    실존주의 철학가로도 인정받는 까뮈는 지독히도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교육을 받았는데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사의 부조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계곡으로부터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의 신화를 인간의 숙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까뮈는 ‘반항’을 강조한다. 자신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다시 굴러 떨어질 자신의 운명을 향해 언제나 다시 돌아서는 시지프의 모습에서 부조리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당당한 태도를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페스트』는 한낱 질병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까뮈의 페스트는 쥐벼룩이 옮기는 실제의 질병이라기보다는 전쟁이나 억압, 독재, 차별, 빈곤과 기아와 같은 인간사의 부조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감내하는 코로나19의 판데믹으로 느끼는 부조리와 일치하는 점이 놀랄 뿐이다.


    작품 속 인물 속에서 판데믹에 대응하는 4가지 유형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병과 대적하여 끊임없이 싸우는 의사 리유와, 그 친구 타루, 또 성실한 공무원 그랑이다. 둘째는 페스트도 신의 뜻이라며 온전히 받아들이는 파늘루 신부처럼 초월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취재차 오랑에 들렀을 뿐 자신은 페스트와 아무 관계가 없다며 도피적인 태도를 보이는 랑베르 기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페스트 덕택에 감옥행이 미뤄지고 혼돈을 틈타 밀매로 호황을 누리는 코타르처럼 재앙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기는 부류도 있다.


    4가지 유형 중에서 까뮈는 의사 리유를 통해 패배할 지라도 싸워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리유는 판데믹에 대처하는 의사로서 매우 모범적인 선례를 보여주었다. 그는 하루 4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하면서 악착같이 진료에 임했고 그 가운데사도 소중한 연대기도 남겼다. 그를 통해 의사의 일관된 철학적 소신이 ‘반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이 없다 해도 질병 앞에 선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소명의식을 가진 의사라면 질병의 의미나 가치를 따지기에 앞서 리유처럼 행동하리라 믿는다.


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

은혜산부인과 원장으로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후 동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책과 인생>으로 등단하여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제6대 회장을 역임했다. 수필집 『초대』, 『고통의 자가 발전소』로 남촌문학상 및 한국수필문학상을 각각 수상하였고 그밖에도 『의사로 산다는 것 I, II』,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아프지 마세요』 등과 『십자가 벌판』, 『불꽃심장 앙헬리나』, 두 권의 스페인어 소설 번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