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Education

Issue Vol.7 2024-08-26 764

박상흠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리더의 아만이즘(amanism)

1. 그림 소개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메두사호의 뗏목(The Raft of Medusa, 1818-19)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1816년 7월 2일 난파된 프랑스의 프리깃함 ‘메두사호’와 관련되어 발생한 실제 사건을 재현하였다.

1816년 6월,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를 돌려받기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로 4척으로 구성된 원정함대를 파견했다. 지휘함인 ‘메두사호’에는 총독 가족과 함께 육군 사병, 수병, 선원, 식민지 개발 정찰대 등 400여 명이 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배가 난파된다.

메두사호의 실제 뗏목

그림 1. 메두사호의 실제 뗏목 (출처; Wikipedia)

총독 가족, 선장, 장교, 수병, 선원, 일부 승객 등 230여 명은 여섯 개의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하였으나,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않아 나머지 152명의 육군 장교, 사병, 선원, 승객 등은 좌초한 범선의 돛대와 갑판 등을 잘라 급조된 뗏목(그림 1)에 올라탔다. 원래 계획은 뗏목을 구명보트와 밧줄로 매달아 육지까지 끌고 가려 했으나,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누군가가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리고 만다.

결국 뗏목에 있던 152명은 망망대해에 버려졌는데, 당시 그들에게 준비되었던 식량이라곤 몇 통의 물, 포도주, 비스킷뿐이었다. 이후 그들 중 일부는 파도에 쓸려 바다로 사라졌고, 식량 및 물 부족에 의한 극심한 기아와 탈수, 지독한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상황이 점점 극으로 치달으면서 내부 반란과 폭동 그리고 (글로 옮기기 어려운) 광기가 표출되면서 죽음이 속출한다.

다행히 난파된 지 13일 후 원정함대의 ‘아르귀스호’에 구조되었는데, 그때까지 생존한 사람은 겨우 15명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구조 후 5명이 추가로 사망하여, 최종 생존자는 단 열 명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으나, 뗏목에서 살아남았던 두 명의 생존자에 의하여 신문 및 책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의 전모가 폭로된다.

메두사호의 뗏목 부분

그림 1. 『메두사호의 뗏목』 부분

그와 같은 내용을 알게 된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완성하여 사건의 참혹한 진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두 개의 삼각형 구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왼쪽의 삼각형 구도에는 돛대를 중심으로 절망, 포기, 비탄, 죽음의 사람들이 배치되었고, 오른쪽 삼각형 구도에는 지평선 위 조그만 점 같은 구조 범선을 향해 온 힘을 다하여 옷을 흔들어 대는 흑인 소년 중심으로 희망, 환희, 감동, 생(生)의 사람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두 삼각형 구도 사이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마침내 구조선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건을 언론지에 알렸던 군의관이다.

당시 프랑스는 워털루에서 패전한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왕정복고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루이 18세 정부는 왕당파 일원들에게 일종의 정치적 보상을 쏟아 냈다. 그런 과정 중 원정대의 프리깃함 ‘메두사호’ 선장도 왕당파의 일원이었던 쇼마레 자작(Viscount Hugues Duroy de Chaumereys)이 임명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과거 시민 혁명 이후 현직에서 물러난 ‘낙하산 선장’으로, 파도와 포탄이 난무하는 바다에서 자신과 부하들의 생존을 위하여 며칠씩 뜬눈으로 지새우고 고민해 본 경험이 지난 20년 동안 없었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현장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non-expert)를 막중한 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로 선임한 것이다.

메두사호 조난 당시의 상황

그림 2. 메두사호 조난 당시의 상황 [1]

원정함대의 총지휘관은 통상적으로 휘하의 배 3척과 보조를 맞추면서 항해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았고, 선박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아르갱 모래톱 근처에서도 항해 규범의 위치 측정 및 항진 방향 조절 등을 게을리하여, 종국에는 ‘메두사호’가 좌초된다 (그림 2). 또한 안전장치도 없이 급조된 뗏목에 수많은 사람을 태우는 바람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망망대해로 보내 끔찍한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메두사호의 선장은 4척의 배로 이루어진 세네갈 원정대의 총지휘관, 즉, 리더(leader)였다. 그 당시 총지휘관의 배에는 지난 수십 년간 나폴레옹 함대에 소속되어 해상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experts)인 베테랑 장교들이 동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전문가의 고언에 귀를 닫고 의견을 무시하였다. 쇼마레 선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네갈 원정함대 지휘함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고 또한 속칭 나름 출세하였기에, 자신의 판단과 방식을 고집하였다.

그 원정대에는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과 온 인생을 걸고 많은 사람이 동승하였다. 하지만 당시 리더였던 메두사호 선장의 아만이즘으로 그 사람들의 꿈과 재산은 물론 140 여명의 귀중한 생명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2. 그림의 배경에 대한 소견

아만이즘(amanism)

그림 3. 아만이즘(amanism)

미숙했던 개인이 정규 및 비정규 과정의 배움을 통하여 능력을 쌓아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고 또한 세상에서 살아갈 탄탄한 역량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능력과 역량의 도움으로 오욕(五慾)이 충족되고, 특히 재력, 명예(권력), 지력(知力) 등을 풍성하게 갖추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야누스(Janus)적인 나’가 형성된다. 그 ‘야누스적인 나’는 한편에서는 풍성한 성취에 따른 커다란 만족과 큰 기쁨을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본인 방식으로의 성공이 객관적으로 인정되고 쌓이면서,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옳다!”, ”내가 최고다!”라는 아만이즘(그림 3)을 형성한다.

아만이즘은 당사자의 귀를 막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타인의 창의적 의견과 아이디어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고착화되면서 기쁨을 주었던 ‘야누스적 나’는 도리어 주위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본인을 곤경에 빠뜨린다.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만이즘에 휩싸이면, 본인의 식견과 다른 사람 (특히, 후배)의 새롭고 창의적 생각과 의견을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해버린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그러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기회와 성장을 의도적으로 막아버리거나, 극한 경우에는 외부적으로는 공식적 절차를 밟아 관련 단체나 조직에서 축출시켜 버린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반 직장 및 조직은 물론이고 객관적이고 이성적 잣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과학계, 자유롭고 창의적 발상이 존중되어야 할 예술계의 역사에서조차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와 같은 사람들 중에는 해당 분야에서 출중한 업적을 이루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가大家들도 적지 않다.

그와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 ‘밧세바 신드롬(Bathsheba syndrome)’ [2] 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이 모든 상황(재원, 인력, 정보 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감을 잃고, 본인은 절대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일반적 윤리 기준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과 도덕적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종국에는 자기중심적 유혹과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몰락은 물론 리더의 힘과 영향력에 압도된 상대방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아만이즘은 오랜 기간에 걸려 습관화되고 고착화되어, 본인이 아만이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하여 본인은 나름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본인이 속한 조직(단체)의 구성원은 물론 매일 살을 맞대고 살고 있는 배우자 및 가족에게 부정적 감정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또한 조직(단체)이나 가정에서 구성원 혹은 가족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심한 경우에는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 연관된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본인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의 소중한 꿈과 재산은 물론이고 귀한 생명까지도 손상시킨다.

3. 이 그림을 통해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각해 볼 내용

(1) 의사가 아만이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병원조직은 다섯 직군(의사, 간호사, 진료지원, 행정, 기능직)으로 대분되며, 병원전체 조직에 나비효과를 지닌 군은 의사직군이다(참고자료 1). 의사는 개업을 하든,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근무하든 의료조직의 특성상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리더의 위치에 있게 된다.

리더로서의 의사는 환자 진료 및 의학 발전의 책임과 함께 조직(의원, 병원) 발전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필자 자신이나 일부 의사 동료들을 관찰해 보았을 때 (필자의 경우는 병원보직을 맡기 전까지는) 환자 진료 및 의학 발전에 대한 책임에만 관심이 많았지, 조직(병원) 발전에 대한 책임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극히 적었다.

즉, 병원조직에서의 리더에 대한 자각, 관심 및 이해가 적었고,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연계적으로 리더에 대한 준비가 턱도 없이 부족하다. 10여년 전 청년의사에서 주최하여 매년 개최되는 HiPex [3] 에 참가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참석자 참여형태의 토론주제가 ‘병원혁신을 가로 막는 4대 걸림돌’이었는데, 참석자 중 한 명이 ‘의사들의 참여부족’을 제기하였을 때,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참석한 다른 직군의 참석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00% 절대 공감의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였다. 다른 병원에서도 의사직군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 자리가 바늘방석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병원은 환자 진료와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다른 직장이나 기업처럼 전체 직원의 경제적 생활 기반이며 삶 및 전문가의 보람을 체감하는 터전이다. 따라서 (직원수에 식구를 곱한) 전체 직원 가족의 탄탄한 삶을 위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또한 물가 인상에 맞추어 매년 올려 지급해야 한다.

또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신의 의료 장비를 매년 새로이 구매하고 병원 관련 시설들도 새롭게 보강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매출의 꾸준한 성장과 함께 포지티브 의료이익을 위한 병영 경영의 성공이 필수적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의사직군이 유념할 사실은 병원 조직은 (매우 특이하게도) 병원장 및 주요 보직자를 전문 경영인이 아닌 의사직군이 맡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 관련된 원정함대의 총책임자처럼, 의사직군 중 누군가는 언젠가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병원 직원 및 가족에게 안정적 직장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직원들의 꿈과 보람을 키우고 가시화시킬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경영 성공을 위한 리더십의 핵심은 구성원의 자발적 협조와 추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참고자료 2). 그리 되려면 직원들 즉, 사람들과의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데, 언론을 통해서 간간히 보고되는 의사직군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일례로 10여년 전 순천향대학 부속 병원 간호사(449명)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중 ‘싫어하는 의사’에 대한 내용이다.

결과는 감정기복이 심한 의사(48.7%), 불성실하고 교감 못하는 의사(17.3%), 권위주의적인 명령조의 의사(10.5%), 그리고 기타로 반말하는 의사, 간호사를 무시하는 의사, 불친절한 의사 등이었다 [4]. 성공 경영을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 협조와 추종을 위한 공감, 소통과는 괴리가 큰 결과였다.

(2) 의사가 아만이즘에 빠지기 쉬운 배경

오랫동안 성공만을 경험한 경우에 “(본인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중략)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중략) 오만하게 만든다(참고자료 3)”의 아만이즘 씨앗이 심어진다. 의사직군이 병원이나 가정에서 여러가지 원만하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는 아만이즘에 상대적으로 쉽게 빠지게 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이 추정된다.

첫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면, 수능기준 고등학교 성적도 전국 최상위권의 성적이어야 가능하다. 이는 많은 경우에 이르면 중학교 때부터 출중한 성적으로 본인이 속한 그룹에서 두각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그 학생은 학교에는 물론 집에서도 우대받는 존재로 떠받들듯이 키워진다. 필수로 참여해야 할 집안 공식 행사에 빠져도 되고, 오직 자신의 성적을 위하여 매진할 수 있게끔 가정 및 학교에서 배려해준다.

의과대학 입학 후에는 장차 의사될 재목이라는 암묵적 동의 하에 계속하여 학교 및 가정에서 소중하게 대우받으며 여러 혜택이 지원된다. 이후 의사 면허 취득 후에도 진료 현장 및 조직에서도 우대되고 받들어 지는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

다소 오래된 기사이지만 ‘심층취재: 몰락하는 의사들’ [5] 의 제목으로 의사들의 자살을 다루었다. 내용 중 의사의 아만이즘 배양 환경과 후유증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는데, 현재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추측된다;

의사들은 살면서 위기관리에 대해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의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대우만 받아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멸시당하거나 내몰려본 적이 없어요.

남자가 전문의 따고 군대 갔다 오면 30대 초반이 됩니다.
전문의 딸 때까지의 생활을 생각해보세요.
새벽부터 한밤 중까지 병원에서만 살았을 거예요.
오로지 병과 환자만 봤지 사회의 톱니바퀴를 느낄 시간이 없었잖아요.
사회적 스트레스에 단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트 의식에 취해 살았을 겁니다.

한국의 부모들, 자식이 의대를 다니면 공부만 하게 하지
집안의 고민이나 고통을 공유하게 하지 않아요.

둘째는 의과대학 교육내용 중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아만이즘에 싸여있는 본인의 모습을 제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관찰(일명 내관(內觀 introspection))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과수업은 매우 빈약하다.

또한 그러한 과정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진료 현장 혹은 일상 생활 중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도록 몸에 배어 습관화하려면 최대 10년이상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의사직군의 고등교육과정은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전공의 3~4년, 전임의 1~2년 도합 11~13년으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교육기간이 가장 길다. 하지만 의과대학 정규교육 및 의사면허 취득 후 교육과정에서도 그러한 과정은 공식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셋째는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아만이즘의 잉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의과대학 정규교육 및 의사면허 취득 후 교육과정의 내용이다. 그 기간 동안의 교육내용은 의학적 및 과학적 사실의 습득으로 이성적이고 어찌 보면 다소 기계적 사고의 능력이 우선시된다.

그러한 과정에 (본인도 모르게) 공감 및 배려 등의 감정 능력이 저하되고, (본인도 모르게) 마주하는 사안에 감정의 흔들림을 가능한 절제하도록 훈련되고, (본인도 모르게) 질병과 관련된 사연과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보다는, 혈액, 영상, 조직 검사 등 손상된 인체의 물질적 결과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마치 영화 이퀼리브리움 [6] 에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하도록 매일 주사 맞고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점점 변해간다. 이 역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4. 심화학습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존과 번식이었고, 현재에도 그 중요성은 전혀 변함이 없다. 특히 생존과 연관된 건강과 질병은 다른 그 어떤 사안보다 우선시된다. 의사라는 인간은 인간의 이와 같은 절대적 사안에 의업으로 관여하며, 그것을 통하여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희망, 웃음 그리고 기쁨을 줄 수 있는 선한 능력자다.

의과대학생은 각자 다양한 이유와 목표를 가지로 의과대학에 입학했겠지만, 본인이 앞으로 부여받게 될 선한 능력이 보다 원만하게 그리고 보다 넓은 세상에 펼쳐지기 위해서는 동료 의사 및 병원 내 다른 직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의학 공부 이외에 추가적 준비로,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음 내용에 대한 자문(自問)을 권한다;

(1) 의사로서 나는 행여 아만이즘에 빠져 있지 아닌지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는가?

필자는 1979년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현재까지 40년 이상 의업에 종사하면서, 의사로서 대학병원에서 그리고 남편과 아빠로서 가정에서 다양한 사건(life events)을 경험했다. 그 중 의사직군에 종사하는 동료 및 미래에 의업에 종사하게 될 후학들에게 꼭 알리고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본인도 모르게 형성된) 아만이즘이다.

현재까지 병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기간 중 약 1/3인 10년간 병원 보직(진료부장 4년, 부원장 4년, 병원장 2년)을 맡았다. 필자가 아만이즘에 쌓여 있다고 자각하고 난 후 병원내 의사직군을 우연히 살펴보기도 하고 또한 보직을 맡은 동안에는 내부직원의 민원을 공식 루트를 통해 보고 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의사직군에서 종종 관찰되는 아만이즘으로 인하여 같은 과 혹은 타과에 근무하는 선-후배 교수 그리고 병원내 다른 직군의 직원들이 겪게 되는 부정적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의 다른 대학 상황도 매우 우연히 접하게 되는데, 몇몇 과원의 아만이즘에 따른 과원간 불화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단단했던 해당 조직이 얼마 후 와해되는 경우도 경험했다. 또한 보직 기간 중 동료 교수, 전공의, 인턴 중 극히 몇명은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진료 민원을 보고 받은 적 있다.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만이즘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만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될 수 있는 사안들이 적지 않아서 보고를 받을 때마다 못내 아쉬웠다.

가정적으로 필자는 결혼 후 근 20년 이상 집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고, (필자에게 아만이즘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집사람과의 불화가 오랜 동안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하여 집사람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자주 입혔고, 집사람은 현재에도 간간히 그때 입은 상처에 대한 부정적 경혐의 내용을 (부정적 감정은 거른 후) 생생하게 토로하곤 한다.

그 내용을 들어보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과거의 필자 자신을 관찰해 보면, 지난 세월 아만이즘에 휩싸여 집사람의 말과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는 마치 일종의 성격 장애자(?)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필자 자신과 집사람은 서로 각자가 분노, 우울, 실망, 슬픔 등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고, 이어서 이런 저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정 내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한번뿐인 삶의 소중한 시간이 소모되었고, 더 나아가 발생된 문제 중 몇개는 해결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부(富)도 손실되었다.

그런데 보다 절실한 문제는 (필자의 아만이즘 때문이라고 깨닫기 전까지는) 외부적으로는 나름 자타가 공인하는 의업의 성실맨으로 살고 있다고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일이 필자에게 발생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무척 답답하고 우울한 적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 것은 지난 세월 동안 필자에게 마치 허리케인처럼 닥쳤던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가 나 자신의 아만이즘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심적 고통, 단 한 번 뿐인 귀중한 시절의 감정적 소모적 낭비 그리고 부의 손실에 따른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어, 충분히 복구되려면 앞으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그러한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필자는 틈틈이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반복하여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긴다. 특히, 병원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병원장직을 수행하는 2년 동안은 혹시 오랫동안 필자의 습(習)이었던 아만이즘이 병원 경영 중 행여 재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자 의도적으로 자주 들여다 보았다.

앞으로 선한 능력자인 의사가 될 후학들이 행여 (본인도 모르게) 아만이즘에 휩싸여 병원 및 가정에서 필자와 같은 직접-간접적 경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에 대한 준비를 권한다.

(2) 의사로서 나는 병원조직 리더로서의 책임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병원 조직은 수 십종의 분야에서 국가공인자격을 받은 전문가(예,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약사, 회계사 등등)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의사는 단독 혹은 그룹으로 개원하든, 종합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든 혹은 대학병원에서 봉직하든 병원조직의 특성으로 리더의 역할이 주어진다.

리더인 의사는 의료 진료 업무 진행의 출발점이며, 경영적으로도 의료 수입 창출의 시작점이다. 병원의 전체 시스템은 의사의 진료 업무를 최우선에 두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작동되도록 편성되었다. 또한 의사는 각자의 진료 현장에서도 의료 업무의 특성 상 동참하는 구성원의 리더로서 진료를 주도하여 수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병원 조직의 주요 보직은 의사가 맡아야 한다. 즉 의사는 언젠가 누군가는 병원 경영에 관여해야 된다. 병원의 전체 직원들은 병원에서 제공한 급여로 각자의 생활과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하게 영위한다.

병원은 각자가 전문 분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지식과 술기를 진료 현장에서 행하면서, 직업적 그리고 삶의 보람을 느끼는 장이다. 그와 같이 소중한 병원이 경영적으로 성공하고 안정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사 중 누군가는 언젠가 경우에 따라서는 몇 일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며 경영에 힘써야 한다.

경영의 핵심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리더십인데, 현재 의과대학의 공식적 의학교육과정에는 리더십을 포함한 병원경영 등에 관련된 학업과 과정은 극히 제한적 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참고 자료

(1) 김종혁, 안근용, 제원우. 피터 드러커가 살린 의사들: 대학병원 편, 21세기 북스, 2014.
- 의사에게 ‘환자’ 및 ‘의학’에 대한 책임에 추가적으로 ‘조직(병원)’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2) 정동일. 사람을 남겨라: 인재를 키우고 성과를 올리는 리더의 조건, 북스톤, 2015.
- 경영에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병원보직자들과의 독서토론용으로 자주 애용하였다.

(3) 이안 로버트슨. 승자의 뇌, 이경식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3.
- 성공만을 경험한 사람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일깨워 준 책이다. 매년 병원 실습 나오는 의과대학생에게 읽히고 문답식 토론으로 학생 본인 스스로를 관찰하는 데 사용하였다.

(4) 윤운중.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 모요사, 2013.
- 그림을 통한 인간이해(human understanding)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얻었다.

각주

 

[1] 그림출처: H. 사비니ㆍA. 코레아르, 메두사호의 조난, 심홍 역, 리에종, 2016년

[2] 성경에서 다윗이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임신시킨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죽게 만든 일화에서 비롯된 말. 권력을 쥔 사람이 스스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감각이 흐려지고 결국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킨다.

[3] 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4] 대전일보. 2012.1.26

[5] 신동아 (2008.6.1)

[6] 원작명 Equilibrium: Killer of emotions, 2002.

박상흠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순천향의대에서 졸업 및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 순천향대학 천안병원 소화기내과에 근무하고 있다. 전문분야는 췌장담도질환이며, 대한췌장담도학회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미국 인디애나대학병원에서 Clinical Research Fellow로 연수하였으며, 전문 관심분야인 ERCP에서 기존 술기(technique)의 한계를 극복하는 창조(creation)에 관심이 많다. ERCP의 새로운 절개도(papillotome)인 Iso-Tome®과 새로운 유두부괄약근절개 술기들을 개발하였다. 선한 능력자인 동료의사들 및 선한 능력자가 될 의과대학생들에게 질병의 발생과정이해, 효과적 치료 및 재발 예방에 해리슨내과학에서 제시한 인간이해(Human understanding)가 중요하며, 병원조직의 리더에 대한 준비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형성된) 아만이즘을 경계하라고 기회 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공유 중이다. 최근 대한내과학회지(Korean J Med 2024;99:84-95)에 ‘인간이해를 통합한 질병발생모델’을 발표하였으며, 일반국민 대상의 미션은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인간이해와 마음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저서로는 『웰빙마음』, 『친절의학』, 『건강을 위한 마음경영 4단계; 지,관,공,통』, 『암극복전략: 암의 인문학적 이해』, 『의사가 들려주는 그림속인간이야기』, 『건강력을 기르자』 등이 있다.